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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왜 그랬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의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해.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가장 크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때. 나는 씻기 힘든 큰 상처를 회복해가는 중이었고, 어쩌면 벼랑 끝에 몰렸다 생각했는 지도 몰라.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 때문에 한 동안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한 동안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고, 한 동안은 밀려오는 대로 만났고. 탐욕과 무욕 사이에서 혼돈스러운 시기였어. 그리고,


그때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너의 상처가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너를 기차에 태워 보낼 때 내 마음은 되돌릴 수 없이 너에게 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했다는 것에 대해서 굳이 의문부호를 붙일 이유는 없어. 그때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였음을 감사히 생각해.


당신과 내가 어긋나게 된 것은 어쩌면 내 욕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빛나던 외모, 겸손한 마음, 자신의 남자를 대하는 자세, 미래에 대한 비젼. 어느 하나 빠지지 않던 너에게 결핍을 느끼게 된 것은 내 욕심이 지나쳤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구나.


표면적인 이유는 결혼을 원했던 너와 결혼의 뜻이 없는 내가 크게 어긋나면서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사실 그것도 내 욕심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너만큼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나에게 더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지 모르겠지만, 당신만큼 나에게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제 요원한 일일 것이라 여겨져. 반면에 나는 너에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호하고 서늘했던 내 말투에 진절머리 났을 법도 한데, 너는 그저 혼자 앓기만 했고, 나는 그런 너를 위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본성이 이기적인 것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애를 하면서 노력을 하는 것이 부질 없다 생각된 까닭이기도 해. 내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뒤틀린 관계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허무적인 태도에 빠져있었던 거지. 지금이라고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아. 만나게 될 사람이라면 만나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사람은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러다보면 같이 살 사람이 생길 것이라는.


당신에게 두 번의 큰 상처를 주었던 것 같아. 생각해보면 난 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의도적인 언행을 보인 적이 있는데, 당신이 큰 상처를 받았던 두번의 경우는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건널 수 없었던 큰 강이 있었다는 것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에는 내가 평범한 삶에 어울리지 않는 인격이었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에는 당신이 희생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어.


오해를 풀 만큼 풀었다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우리가 헤어진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향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생각했던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는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나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속으로 생각했던 거야.


당신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내가 보살펴 주고, 사랑해줘야 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세상의 티끝이라곤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함. 화목한 가족. 화려해 보이는 직업. 이렇게 굴곡 없이 아름답게 자라온 당신에게 나는 그 행복을 지켜줄만한 나목이 되어야 했는데, 나에게 그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구나.


명동, 공덕, 수성못, 구룡반도, 전주. 우리가 함께했던 자리마다 아직도 당신의 기억이 남아 있지만, 기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히 생각할게. 헤어지면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인 내가 이렇게나 미안해하는 것을 보면 내가 정말 나쁘게 굴었구나 싶어. 미안해. 그리고 당신의 행복만큼은 진심으로 빌어. 지금쯤 분명 당신의 행복을 지켜줄 사람을 만나서 당신이 꿈꿨던 미래를 키워 나가고 있으리라 생각해.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음을 진작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야. 잘 지내길 바래.